▲ 김영삼 목사

몇 년 전 한 권사님의 심방요청을 받았다. 대답은 했지만 흔쾌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 분의 집을 가려면 고속도로를 2시간 정도 달려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대답을 한 후 머리 속은 온갖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권사 정도가 되신 분이 목사 심방을 요청한다는 둥, 거기를 다녀오면 거의 하루 사역을 다 잡아 먹게 된다는 둥, 이런 심방은 효율적이 아니라는 둥,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떠올린 듯하다.
정한 날이 되어서 심방을 갔다. 권사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 매주 그 먼 거리에서 교회 오시는데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내심 힘들다는 대답을 기대한 물음이었다. 그런데 권사님의 대답이 내 머리를 쳤다.

“목사님, 저는 매 주일 교회에 가지만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해본 적이 없어요. 매주 어떻게 집에 오는지를 모릅니다. 예배 때 받은 은혜에 감격해서 울면서 오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 가슴을 쳤다. 너무도 형편없는 내 모습이 불쌍했다. 권사님은 매주일 2시간씩 달려서 교회에 오면서도 한 번도 그 거리를 계산해 본적이 없는데, 목사가 거의 1년에 한두 번 가는 곳을 멀다고 투덜거리며 온갖 계산을 다했으니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신앙교육을 하는 목사가 얼마나 형편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들통 난 기분이었다. 은혜를 모르는 목사가 은혜 속에 사는 권사님을 심방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권사님은 계산할 줄 모르는 분이 아니셨다. 계산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계산이 되지 않은 것이다. 받은 은혜로 인해 계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은혜는 계산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날 권사님과의 만남이 필자의 목회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목회사역에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를 세우게 된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목사가 되지 말 것이며, 은혜 없이는 사역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 후로 기도할 때마다 외치는 기도제목이 이것이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은혜가 말라가는 세상이다. 필자의 목회현장 만큼은 마르지 않는 은혜의 강물이 흐르기를 끊임없이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