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하고 김매던 제주 소녀 그 땅에 장로교 화합 일궈

지난 24일 장로교 4개 교단 연합 감사예배가 열리던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이하 ICC 제주). 각 교단을 대표하는 목사들이 나와 함께 기도하는 순간 VIP석의 허정옥(49) ICC 제주 대표이사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곳이 성전이 되도록, 이 땅이 성도들이 구름떼처럼 모이는 국제선교센터가 되도록 해주세요"라고 해왔던 기도가 이뤄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배의 목적을 성취하셨습니다. " 눈물이 쏟아졌다.

연합예배 숨은 공로 허정옥 국제컨벤션센터 대표 그는 서귀포 대포항 인근 마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2남7녀 중 일곱째딸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물질＇을 배워야했던 제주 소녀. 그는 가난했지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로 이끌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부산대학교에 진학한 뒤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부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 만인 1998년, 탐라대 경영학과 교수로 귀향했다. 교수로, 또 지역방송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 여성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이 발판이 돼 ICC 제주 대표가 됐고, 장로교 4개 교단의 연합예배 유치에 성공하며 역사의 숨은 공로자가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ICC 제주는 그가 어린 시절 물질하고 김매기하던 그 땅에 서 있다.
당초 연합예배 장소는 제주시에 있는 한라체육관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확신을 갖고 있던 그는 행사 직전까지 여러 창구와 접촉하며 설득에 나섰다.

허 대표는 "4800석 규모의 ICC 제주 행사장이야말로 이번 연합예배의 역사적인 의미나 감동을 뒷받침하기에 손색이 없는 장소"라며 끝까지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극적으로 행사 며칠을 앞두고 ICC 제주에서 연합예배가 열리기로 확정됐다.

그가 ICC 제주 대표가 된 것은 2006년 3월. 그 전까지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던 그였기에 남들은 잘할 수 있겠느냐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그는 두렵지 않았다.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연합예배를 비롯해 다양한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렸다.
제주도는 1만8000여개의 신이 있을 정도로 무속신앙이 성한 곳이다. 더구나 ＇괸당＇이라고 불리는 제주 특유의 혈연·지연 문화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다른 지역에 비해 결코 쉽지 않다.

그는 "제주도는 국제 자유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에 따라 의료와 교육 분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면서 "기독교 재단들이 제주도에 내려와 활동한다면 제주 선교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제일 먼저 했던 것도 바로 학교와 병원을 짓는 일이었다.
허 대표는 특히 제주도가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선교에도 서울보다 더 적합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보다 제주도가 비자 없이 들어오기가 쉽다"며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제자 훈련을 받은 뒤 본국으로 돌아가 선교를 한다면 제주도가 아시아 선교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달초 아버지 허태행 장로의 삶을 기록한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God)＇라는 책을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으로 펴냈다. 집안에서 쫓겨나면서도 하나님을 섬겼던 그의 아버지와 가족의 삶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허 대표는 "제주 사람들이 아버지와 내가 받은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증거＇로 보고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