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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교
목포제일노회 선교방 - 세계 열방에서 복된 소식을 알리는 아름다운 사역소식입니다.
작성자 솜차이
작성일 2012-11-07 (수) 13:31
ㆍ조회: 494  
간증문
저의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옛날 농촌의 전형인 농사를 짓고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 형제들은 8남매이고 그 중 시집 간 고모들도 있었고, 아직 시집 가지 않은 고모와 삼촌, 그리고 저의 형제로 형님과 여동생이 함께 살았다. 특별히 할아버지는 팔남매를 키우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셨고, 밤에는 초롱불 밑에서 글 읽는 것을 좋아 하신 분이셨습니다. 가끔 할아버지는 동네 어른으로써 게으른 사람들에게 “하늘은 다 보고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동네 일에 요령 피우시는 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팔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여러 개인사업과 사회활동을 통해서 대통령 훈장(협동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 8년 동안 면장을 하기도 했는데 다른 것 보다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분이셨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여담으로 저의 아버지가 “국회의원 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1970년도 어느 해, 저의 마을(두원면 운대리 중대) 밑에 교회가 건축 되었는데 그 교회가 운대 교회입니다.
저희 가정은 농기계인 경운기를 통해 교회 건축에 도움을 주게 되었고, 먼저 할머니와 고모가 먼저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고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창시절 고흥읍 교회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애길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저는 거의 부족함이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삼대 째 예수 믿는 가정이 되었고 할아버지 자녀와 손자들이 거의 예수를 믿으며 그 중에 저와 작은 아버지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가 처음으로 예수를 영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성경 학교 때입니다. 한 남자 대학생으로부터 요한 복음 3장 16절 통해서 였고, 학 년를 진급할 때 마다 종교란에는 자신감 있게 기독교가 나의 종교라고 확실하게 고백했습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 한 것은 그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였습니다.

특별히 군 시절 신우회(1공수 여단) 활동을 했는데 팀원(2/12명)으로 훈련하면서 주일 날이면 대대부원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도 했습니다.  
한번은 고참이 교회 간다는 이유로 나의 얼굴을 때렸고 송곳니 4개 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 당시 부대의 분위기는 굉장히 사나웠습니다. 날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려울 때일수록 빛이 나는지? 신앙과 세상을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분명히 신앙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부활을 믿었으며 그곳에서 믿음의 몇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그들은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허리 디스크 환자였는데 신앙으로 극복하고 “UDT"특수훈련을 마치고 돌아 왔으며, 또 한 친구는 그의 지휘관 지역대장 (소령)을 예수 믿게 하는 일들도 생겼습니다.

  힘들고 어려움 속이지만,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가 제대할 때 두 가지 큰 일이 있었는데 저의 부모가 예수를 영접했고 또 하나는 저의 대대에 교회당 다니는 사람이 50명 이상 될 정도로 여단 교회가 붐비고 활성화 되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제대하고 난 후 하나님을 조금 더 알기 위해 예장개혁 측(광주개혁신학연구원 대학부(4), 연구원(2), 서울 청담동 총회신학원(1)) 신학 공부를 했고 전남 신안군에 있는 조그만 섬 사치도에서 전도사, 목사로써 17년 사역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는 “내 인생에 선교사로써 사역을 할 수 있다면 더 큰 영광이 없다”라고. 그러던 중, 태국 선교지를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수고하는 선교사 몇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 선교사들을 본 순간 마치 전쟁 속에 요새를 점령한 특수부대처럼 보였습니다.  느낌은 쉽게 끝나지 않을 분위기, 그리고 그 전투에 참여하고 싶어졌습니다.
   세상에 선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일 만큼 큰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하고 지휘하는 지상의 가장 중요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오십 가까이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섬, 농촌 그리고 도시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방선교도 아주 중요한 전쟁터 중 하나 입니다. 물론 모든 이방나라가 그렇겠지만,
지금 태국은 엄청난 전쟁터이며, 동과 서과 부딪치고 이슬람, 불교, 힌두교가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저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부대로 전쟁에 임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주 젊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착오와 실수들이 삶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방법은 다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르시고 또한 그 복음의 사명을 따라 이 태국 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태국 사역 선교사로 한 텀을 마치고 두번째 텀에 들어 갔습니다.
사역의 내용은 1)교회개척 2) 예수 안에서 스포츠를 통해 제자 양육3)예수 안에서 음악을 통한 제자 양육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송진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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